아주 오랜만에 한시 한 수 소개해봅니다. 옥봉(玉峯) 백광훈의 오언절구입니다.
- 寄梁天維 - (양천유에게)
昨日南山飮 어제 남산서 술을 마시며
(작일남산음)
君詩醉未酬 취해서 그대 시에 화답도 못했지
(군시취미수)
覺來花在手 깨어보니 내 손엔 꽃잎이 있어
(각래화재수)
蛺蝶伴人愁 나비가 내 수심의 짝이 되더군
(협접반인수)
옥봉(玉峯)의 한시는 담박하고 서정적이라는 평을 많이 듣습니다. 고적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 많은 편인데, 그러한 감성이 과장되게 표현되지 않아서 읽는 맛이 아주 좋습니다.
술을 마시며 한시를 짓고, 그 시에 화답하는 시를 지으며 노는 것은 당시 사대부들의 풍류생활이었지요. 그런데 옥봉은 술에 취해서 화답시를 짓지 못하고 곯아떨어진 모양입니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서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겠지요. 그래서 이 작품을 지어 친구에게 보냅니다.
처음 두 구절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지요. 그저 그간의 사정을 풀어 놓고, 미안함과 멋적은 심정을 슬쩍 드러내보이는 정도랄까요. "어젠 내가 술이 좀 과했지? 뭐 실수한 것은 없나 모르겠구만.." 이런 마음이 엿보이는 듯합니다.
이어지는 두 구절에서 과연 대가다운 솜씨가 드러납니다.
꽃잎이 왜 손에 쥐어져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술을 마시다 꽃향기에 취해서 꺾어 들었을까요? 아무튼 이 꽃잎의 향기가 나비를 불러왔나봅니다. 친구와 퍼마신 다음날, 뭐라 딱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는 아련한 쓸쓸함을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근심 수(愁) 자"가 바로 그 느낌을 뜻한다고 새겨봅시다. 어디서 묻어왔는지 알지못하는 꽃잎에 끌려와 주위를 맴도는 나비가 그나마 시인의 '愁'를 달래준다, 공감이 느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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